*내용 상 필요한 사투리는 정정하지 않고 인터뷰이의 표현대로 표기하였습니다.

정숙은 81살로 군산 옥산면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농가에서 태어난 정숙은 학창시절부터 결혼 후까지 경제활동보다는 농사활동을 돕는 노동을 지속해왔다. 1남 3녀를 둔 정숙은 셋째가 결혼 후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고, 식당의 한 켠인 숙소에 자리를 마련해서 잠을 잤다. 그게 곧 정숙의 집이었다.

딸들은 같이 살자고 하는데, 딸내 집이 3층인데 목재소를 하던 곳이여서 가팔러. 올라가면 갑갑하지. 같은 주택 건물이라고 해도 여간 불편하게 아니여. 한번 물건이라도 놓고 올라치면 다시 올라가야하니까 젊은 사람들은 1분이면 다녀올 걸 나는 30분 걸린다고. 그래서 그냥 식당에서 산다고 했지. 집을 얻어주려고 해도 그 비용이 쉽게 나오나. 그리고 여기 식당에 음식도 있고 여기가 오히려 편해.

7년 전, 셋째 딸인 진영이 정숙에게 아파트를 마련해줬다. 3개의 방과 1개의 화장실 그리고 거실과 주방이 이어져있는 연립주택의, 식당 근처의 걸어서 5분 거리에 자리잡은 아파트였다. 하지만 정숙은 식당 옆에 자리잡은 컨테이너에서 식당 내부에 마련된 숙소로, 형태가 바뀔때마다 적응해온 삶의 동선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나름 편하게 해준다고 1층을 샀더라고?(웃음) 그래도 불편해. 거기서 내가 뭘 해먹겠어. 결국 식당을 나오게 되는거야. 여기 식당이 맨날 하는 식당도 아니고 간간이 장례식장 일이 있을때만 잠깐 열고 운영하는 곳이니까 차라리 여기가 편하지. 한 겨울에 오다니는 것도 일이고, 한 여름은 더 힘들어. 무릎도 성하지 않은 노인네가 밥하나 해먹겠다고 여길 오고 있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여기보다는 넓고 티비도 크니까 좋긴 한데, 성가시지. 딸애는 내가 맨날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하는데, 어쩌겠어. 나도 예전처럼 젊고 자전거타고 다니던 때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너무 늙었잖아.

정숙이 일을 하는 식당은 일반적인 식당이 아니다. 장례식장의 부대시설인 식당으로 상이 들어올 때만 영업을 한다. 최근엔 상이 많지 않아서 한달에 한-두 번 영업을 할까말까다. 정숙은 일이 있을 때는 낮밤 없이 식당에 매달려 일을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한가롭다. 정숙의 하루 일과와 주된 동선은 어떨까.

-새벽 5시나 6시쯤 일어나면 목욕탕을 가지. 원래 수영장을 다녔는데, 코로나 때문에 안가다 보니까 요즘에도 영 가는게 성가시더라구. 버스 타고 목욕탕을 가서 목욜을 하고 10시쯤 식당 가서 아침 먹고 빨래 거리 있으면 하고 티비 보면서 낮잠 좀 자다가 친구 놀러오면 친구랑 이야기하고, 애기들한테 줄 반찬 할 장을 보거나 우체국가서 반찬 좀 보내지. 그러고 집(식당)에 와서 좀 쉬다가 아파트로 돌아가서 티비보고 자는거야. 내내 자는거지. 푹 자는 건 아닌데 깜박깜박 졸다보면 하루가 얼른 가 있어. 저녁 9시쯤 되면 잠자리 들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거지.

-식당 방은 작아보여도 식당에서 음식도 하고, 넓은 주차장에 생선도 말리고 옷도 널고, 아파트도 집이라 생각하면 내가 사는 집이 꽤 넓지 않겠어.(웃음) 마음만은 아주 부자야. 이렇게 넓게 생활을 하다가 자식내가 사는 곳에 같이 살 생각하면 갑갑해. 애들은 내가 나이도 드니까 걱정인가본데 이 나이도 요즘으로 따지면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야. 그리고 맨날 운동하라고 하는데 여기서 살면서 여기저기 사부작 다니는 게 차라리 운동되고 좋지 않겠어.

정숙의 자녀들은 아파트에서 머물지 않고 식당의 한 켠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정숙이 마땅치 않다. 최근에 무릎 수술을 하고 3개월 간 일을 쉬었던 정숙에게 자녀들은 일을 그만두고 아파트에서만 머물거나 자녀들의 집에 합치기를 제안했다.

-원래 일하던 사람은 계속해서 일을 해야하는 거야. 애들은 내가 힘들다고 식당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데 내가 이게 돈이 돼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재미로 하는거야. 이것도 안 하면 내 하루가 너무 허무하지 않겠어. 일도 하고, 식당에 있는 핑계로 애들 반찬도 만들어주고 나 먹을 것도 만들고 사람들이랑 오고다니면서 말도 섞지. 이것마저 안 하면 내가 아파트에서 나오기나 하겠어? 다 날 위한다고는 하는데, 사람은 일을 계속 해야지. 핸드폰도 잘 못 만지는데 내가 이것마저 안 하면 뭘 하겠냐고. 살아있어도 사는 게 아니지.

정숙이 자녀들이 본인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건 무엇일까. 

-뻔하지 뭐. 어디 병원가야 한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반찬해주면 반찬 좀 잘 가져가고. 용돈도 두둑히 주면 좋고(웃음) 근데 애들도 바쁘니까. 어디 병원을 가자고 말하기도 민망하니까 내가 버스타고 다니는거야. 반찬해줘도 어디 잘 가져가간? 요즘엔 집에서 잘 안 해먹잖아. 애들은 이제 자기들도 부모니까 잘 해먹고, 손자들은 젋으니까 집에서 안 먹는다고 안 가져가고. 반찬이 늘 남는거야. 그러면 또 셋째 딸이 혼낸다고. 버릴 거 왜 하냐고. 그러면 이웃에나 나눠주는 거지. 늙은이가 뭐가 낙이겠어. 그런게 낙이지. 

주택에 살던 이전의 인터뷰이들은 아파트를 원했었다. 그런데 주택에서 거주를 하다가 아파트로 이주를 하게 된 정숙은 아파트에 삶의 중심을 두지 않고 주택과 같은 곳에 머문다. 정숙이 원하는 ‘집’의 형태는 무엇일까

-복잡한 거는 싫고 편했으면 좋겠어. 오다니는 것도 편하고, 살림살이도 편하고. 내 입장에서는 식당에 이미 반찬거리가 있고 밥이 있는데 아파트에서 또 밥을 차리기가 불편한거야. 그러니까 다시 나오지. 목욕탕이랑 수영장을 한참 못 나갈 때 나 편하라고 딸애가 반신욕 기계도 화장실 욕조에 설치해줬는데, 아휴, 그것도 불편해. 목욕탕에 가면 냉탕도 있고 얼마나 좋냐고. 그런 곳에 오다니고 생활하는데 편하길 원하는거지. 요즘엔 자전거를 못 타는데 자전거 타고 다니던 때가 너무 그리워. 어딜 가던지 차로 다녀야하니까 무릎 성치 않은 늙은이들은 다 불편해.

정숙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내 한 몸 뉘일 곳이지.(웃음) 누워서 자고 티비보고 친구들 만나고 자식들 먹일 음식하고 나 먹고 자고. 하루를 그렇게 보내면서 어쩔 땐 친구보다 자식보다 더 자주보고 쉬고 편안하게 있는 곳이지 않겠어. 나는 집에는 미련 없어. 큰 집 좋은 아파트 그런게 뭐가 필요해. 어차피 누워서 자면 똑같은 거 아닌가. 내 한 몸 뉘일 편안하고 익숙한 곳이 최고지. 나는 다른 집들처럼 신혼을 꾸렸던 집에서 쭉 산 게 아니고 남편 별세하고 자식네 전전하다가 여기에 자리를 터서 그런지 큰 집 보다는 작은 방같아. 집이란게. 오늘 하루 잘 자고 일어나면 그로 족하지.

｜'00의 집, 그 집'은 ①군산 시민이고 ②한 집에서 최소 20년 이상 거주하신 ③만 65세 이상의 고령 여성을 인터뷰한 기획 인터뷰로 군산 내에서 각기 다른 동네에 거주하시는 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2022 청년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기획 및 제작_우만(WUMAN)

｜문의_wuma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