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상 필요한 사투리는 정정하지 않고 인터뷰이의 표현대로 표기하였습니다.

갑례는 35년생, 올해로 만 87살이다. 22살에 결혼하여 옥구읍(과거 송천)으로 터를 옮기고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60여 년 동안 갑례의 집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집 인근에 자리한 미군기지 후문은 갑례가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이지만, 과거 풍요로웠던 동네 앞바다는 간척 사업으로 인해 도로와 건물이 들어섰다. 미군기지 옆에도 군산 공항이 들어섰다. 동네의 풍경 변화는 갑례의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경자가 경험한 생활의 변화가 곧 군산이 겪은 변화이기도 하다.

-처음 왔을 땐 여거(여기에) 미군들이 시글시글(우글우글)했어. 그땐 미군밖에 없었지. 옛날에는 미군들이 훈련으로 마을을 오다녔어, 가끔은 미군들이 막 돌아다니다가 사람들 집으로 들어오기도 해서 문을 잘 잠그고 자야 했어. 무섭잖아. 말도 안 통하고 군인인데 그렇게 막 집에 들어오면. 그리고 옛날에는 바다가 있었으니까 밥만 먹으면 바다에 갔지. 그 옛날에는 아침마다 물질하러 갔어. 우리가 해태(김 양식)를 했는데 바다 간척 사업 때문에 양식을 못하게 되니까 보상을 받았어. 그 돈으로 집을 새로 지었지. 해태(김 양식)를 못 하게 되고부터는 밭을 갈거나 남의 논에서 일했어.

오랫동안 한 터에서 거주한 만큼 갑례의 집은 두 번 수선을 했다. 거실과 주방 그리고 방이 3개인 구조에 큰 변화는 없었으나 낮았던 집이 조금 높아졌고, 넓었던 마당은 마을의 도로를 만드는 데 내주면서 조금 좁아졌다. 

-처음 집은 옛날 집이었으니까 작고 야찼(낮았)어. 방이랑 집이 다 야차(낮아)서 고은이(손녀) 할아버지랑 큰할아버지 둘이 벽돌을 찍어서 집을 새로 지었지. 그렇게 지은 집에서 잘 살다가 고은이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내가 지었지. 원래는 마당이 더 큰 집이었는데 마당을 두 번 내줬어. 예전엔 신작로도 없었고, 길이 좁아서 사람만 오다닐 수 있었지. 차는 못 다녔어. 그런데 신작로도 만들고 길을 터야 한다고 하니 우리 집 마당을 두 번 내줬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갑례의 집은 소음으로 가득 찼다. 군산에서 제주로 가는 항공기와 군부대의 전투기 훈련으로 인한 소음이었다. 요란한 소음에도 갑례는 일상인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비행기와 전투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갑례는 텔레비전도 못 보고 연속극도 볼 수 없다는 한탄으로 말문을 텄다.

-전투기 때문에 못살아. 비행기 때문에 막 덜그렁덜그렁 집이 울리고, 그릇들도 많이 깨지고, 시끄러워서 귀가 찢어질 듯이 아프고 못살아. 비행기가 이리로 지나가니까 우리 집 앉아서 비행기 떠서 가는 거 많이 봐. 하나 가면 5분 있다가 하나 또 가고 5분 있다가 하나 또 가고 하니까 시끄러워서 귀가 찢어져. 새벽 2시쯤이 더 시끄러워. 그리고 비행장에서 이런저런 게 흘러들어서 동네 사람들이 암으로 많이 죽었어. 우리 집 양반도 암으로 죽었고. 그런데 그걸 인정해주나? 인정 안 해주지! 우리 집 옥상에는 소음 측정하는 기계도 달아놨어. 원래 노인당에 달아야 했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까 우리 집 옥상에 달자고 해서 허락해줬지. 정말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야.

갑례가 생활을 하는 옥구읍은 군산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을 들어와야 하는 곳이다.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배차 간격이 짧지도 않고, 들어오는 버스도 수가 줄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노년기의 갑례가 이용하기엔 이제 힘들다. 

-요거(여기에) 버스 2대 다녀. 그 전에는 한 3-4대 다녔는데 지금은 자가용이 많잖아. 애들이 5명이면 차가 5대 있으니까 이제 버스가 안 다녀. 그리고 이제 내가 늙어서 버스도 못 타니까 혼자서 시내 안 나간 지도 5년 됐어. 아들하고 나하고 사는데, 내가 시내도 못 나가니까 딸들이 반찬 같은 거 다 사다 주지. 군산 시내에 가면 밥도 먹고 옷도 사 입고 하는데, 고은이 엄마(딸)가 나 데리고 가려면 밥도 사 주고 또 데려다 줘야하니까 나가자고 하기도 그렇지.

갑례는 딸이 오는 때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을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비행기와 전투기의 막을 수 없는 소음으로 가득한 동네와 집이지만, 곳곳에 갑례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아있다. 앞마당에는 밭에서 길러낸 작물들이 보관되어 있고, 뒷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갑례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600여 평의 밭에선 참깨 등이 자라고 있다. 

-밭에 제일 많이 있지. 고구마, 고추, 마늘, 들깨, 참깨, 대파 등 많이 키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밭에 나가서 일해. 요즘 같은 여름에는 해가 뜨거우니까 오전 10시 되면 집에 와서 거실에 쉬다가 남의 집에 놀러 가거나 노인당 나가서 사람들 만나. 그러다가 저녁 6시쯤에 다시 밭에서 두어 시간 더 일하다 집에 오고 그러지. 노인당도 예전엔 사람이 더 많았는데 많이 죽었지. 작년에만 6명이 죽었어. 그러고는 이제 노인당에서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되었어. 집에는 심심해서 잘 안 있어. 집에 있음 뭐 해, 할 게 없는데. 여기저기 나다니고 일하고 하는 게 낫지.

바다에서 물질을 하거나 밭이나 논을 가꾸는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는 등 한평생 일을 해온 갑례의 노년기를 챙겨주는 건 기초수급자 지원금과 비행장 소음으로 인한 보상뿐이다. 평생 일을 했는데, 연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연금은 어디를 댕겼어(다녔어)야 타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것을 내가 못 다녔잖아. 어디로 일을 안 다니고 결혼하고 애들 돌보고 바다 있을 때는 바다 가서 배꼽, 소라, 조개 잡으러 다녔고 양식할 땐 양식 돕고 남의 논에서 일하거나 밭만 매고 그랬지. 그러니까 연금 같은 거는 없어. 영세민이 받는 기초수급자 지원금은 받지. 그리고 여기 비행장 보상을 쪼매(조금)씩 줘. 가끔은 바다가 그리워. 메운 걸 다시 퍼낼 수는 없지만, 예전에는 아무리 없어도 바다 나갔다가 오면 뭐든 잡아와서 먹거나 돈이 됐으니 봉창(주머니)에 돈이 안 떨어졌거든. 옛날에 바다 막는다(메운다)고 도장 받으러 다녔는데, 그때 도장 안 찍어주고 바다가 있었으면 지금도 가서 잡아다 먹었을 거 아니야.

갑례는 소음으로 시끄럽고 시내로부터 고립된 이 집을 떠나고 싶지는 않을까?

-왜 안 떠나고 싶겠어. 요새는 아파서 떠나고 싶어. 그런데 떠나고는 싶어도 쉽지 않잖아. 여기가 고향이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아. 집 내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집을 후딱(금방) 파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못 가. 고은이 엄마가 맨날 나한테 같이 살자고 하는데, 내가 90살까지 여기서 여태 살았고 여기가 고향인데 그렇게 후딱(금방) 떠나는 게 쉽겠어? 어려워. 그래도 떠난다면 아파트로 가서 살아보고 싶어. 왜 그러냐면 여기는 촌이고 주택이라서 눈이 오면 눈 쓸어야지, 비 오면 마당 살펴야지, 바람이 세게 불면 문도 못 열고 먼지가 막 방으로 뿌옇게 들어오고 그러니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야. 그러니까 시내나 아파트 그런 데 가서 살고 싶긴 하더라고.

갑례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집이 집이지 뭐가 다르겠어. 그냥 고향이지. 내가 여기에서 딸 둘과 아들 둘을 키웠어. 눈을 감아도 동네나 집 오는 길이 눈에 훤하지. 다 같이 살았고,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 여기서 자식들 다 키우고 고은이 할아버지 (저승으로) 보내고. 여기서 모든 걸 다 했다고. 그럼 나도 여기서 죽지 않겠어? 고은이 엄마(딸)는 계속 같이 살자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내 나이도 이제 90인데.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다가 가겠지 뭐.

｜'00의 집, 그 집'은 ①군산 시민이고 ②한 집에서 최소 20년 이상 거주하신 ③만 65세 이상의 고령 여성을 인터뷰한 기획 인터뷰로 군산 내에서 각기 다른 동네에 거주하시는 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2022 청년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기획 및 제작_우만(WUMAN)

｜문의_wuma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