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원한 적수이자 연인] -친구야 방학했는데 뭐해? 엄마는 나를 친구라 부른다. 엄마한테 나는 책을 추천하고 함께 여행하고 집 밖 세상에서 보고 온 좋은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엄마를 서운하게 하고 화나게 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 엄마 편을 들어주거나 엄마도 너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중년 여성들의 경청 수치를 매길 수 있다면 엄마는 무조건 평균 이상일 것이다. 그저 물리적 경청이 아니고 들은 이후 자신의 삶을 살피고 심지어 바꾸어보기도 하니까. -인복아 이 책 읽어 봐. 좋아할 거야.-인복이는 인생이 뭐라고 생각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인복이라고 부르는 날이 훨씬 많다. 인복이는 내가 추천한 책은 대부분 재미있다고 하는, 보람을 주는 고객이다. 집 밖 세상을 자유롭게 나다니는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은 누리지 못한 것이니 만끽하라 응원하는 사람이다. 인생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대번에 답하는 명언제조기이기도 하다. -눈물의 씨앗이라니. 엄마는 보호받는 것을 좋아한다. 보호받지 못한다 느끼면 좌절한다. 반대로 나는 보호받는 것이 간지럽다. 그렇다고 남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것도 영 별로지만, 엄마가 좌절하는 건… 역시 싫다. 엄마는 아빠가 자길 보호해주길 바라지만 불행히도 그런 결혼생활은 못했다. 참고 참은 엄마가 터지면 함께 여행도 가고 맛있는 걸 먹고 산책을 했다. 엄마가 너무 불행한 건… 싫으니까. -이 집에서 사는 게 답답해 책을 나눠 읽고 함께 걸어도 내가 엄마를 답답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알았다. 그래도 이 집의 그 영역 일 인자는 아빠일 거라 생각했다. 아빠를 쫓아낼 수는 없으니 우리가 한 편이 되어 오래오래 잘 살면 되지. 엄마도 답답함이 가실 때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결혼하자마자 시댁살이, 엄마에겐 신혼이 없었어 엄마가 아빠랑 둘이 따로 나가 살겠다 했을 때 황당하고 허무했다. 평생 엄마를 가장 괴롭게 한 사람과 / 단 둘이 / 이 답답한 집보다 더 좁은 집에서 살겠다니.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진심으로 말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일사천리로 방을 구하고, 신혼살림이라도 꾸리는 듯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는 내 진짜 황당함의 근원을 깨달았는데, -잘해줘봐야-걸스데이(Girl’s Day) 엄마가 나보다 아빠를 택하고 마는 것에 서운하고 화가 난 거였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잘해줘봐야‘ 처럼 한남이 할 법한 말들이 나를 옥죄었다. 결국 누굴 사랑해서 결혼할 수 있는 부류의 인간들은 믿을 게 못된다는 비약도 했다. -육체적 탯줄은 출산과 함께 잘리지만, 정신적 탯줄이 잘리는 것은 평균 30대 엄마 남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남편 롤을 기꺼이 해내는 스스로가 기특했던 것일까? 나는 모부와 나를 분리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랑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런 말을 잘도 하던 내가 아득하다. 태어날 때 의사가 기껏 잘라준 탯줄을 다시 묶고 엮어, 친구라는 위생적이고 다정한 용어 아래서 엄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