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책상 위에 차곡차곡 모아온 것들] 오랜만에 엄마 집에서 밥을 먹었다. 고새 여름 열무들로 김치를 담근 엄마는 배가 고프다는 말에 “별 건 없는데.”라며 직접 만든 열무김치와 할머니가 준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를 식탁에 차려줬다. 그걸 조금씩 덜어 밥과 비벼먹었다. 아삭하면서 매콤하고 고소하기도 한 여름의 맛을 느끼고 있으면, 계절이라는 게 촉각뿐만 아니라 미각에서도 느껴지는 구나 확신하게 된다. 엄마는 어쩌면 이렇게 계절마다 상차림을 바꿔서 먹지. 혼자 살 땐 느끼기 힘들지만, 엄마 집에서는 집안 곳곳의 물건과 식탁에서 계절을 실감한다. 거실의 매트도 벌써 대나무 자리로 바뀐지 오래다.“부지런도 한 우리 정여사.” 거실의 대나무 자리를 보며 말하자 엄마는 그걸 알아봐준 나에게 기쁨을 표시한다.이번에 새로 산거야. 그건 몰랐네, 어쩐지 끝이 새 거 같긴 하더라. 누워봐, 시원할걸. 엄마의 성화에 결국 거실 한 복판에 누워 등의 서늘함을 느껴본다. 아, 이래서 옛날에 대나무로 이것저것 만들어서 안고자고 했나봐. 시원하네. 그치? 등산 다녀와서 땀 빼고 샤워하고 여기 누워있으면 에어컨 킬 필요가 없다니까. 그래도 올해는 정말 덥다니까, 에어컨 좀 키고 살아요. 운동도 적당히 하고. 그렇긴 해. 벌써부터 더우면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엔 어쩌려고 이런다니. 그러니까, 에어컨 아끼지 말라고.맞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걸 느끼며 거실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현관에 달린 풍경의 소리가 들려온다. ‘풍경소리가 액운을 풀어주거든.’ 엄마가 현관에 풍경을 달면서 한 말이 떠올랐다. 문득,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글을 써야겠다 싶어졌다. 여름의 채소로 배를 채우고, 여름의 물건으로 더위를 나고, 여름을 나누는 단어로 앞으로의 여름을 걱정한다. 우리의 삶에 속속히 담긴 풍습들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구나. 나는 아무렇지 않게 풍습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구나.“봄이라서 냉이로 된장을 끓여봤다.”, “겨울 무는 달아서 무채 해먹으면 맛있다.”, “5월에 나는 양파로 김치 담그면 시원하고 맛있단다.”, ‘무슨 계절엔 무엇이 몸에 좋단다.’ 등등. 옛날처럼 아궁이를 떼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이 아닌 네모난 시멘트 상자 속에서 살지만, 삶에 담긴 풍습은 여전히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할머니가 만들어준 된장으로 밥을 먹으면서, 시장에 나가 매주를 사와 옥상에서 잘 세척하여 볕에 말린 장독대에 된장을 담갔을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얼른 비법을 배우러 가야 하는데.’라며 조바심도 내고. ‘풍경소리’가 액운을 풀어준다며 현관에 달고 24절기에 맞춰 계절의 고민하는 엄마를 보면 각 계절마다 뭐가 좋은지, 더 이야기해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 속에서 자란 나는 어떤 풍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지 생각한다.민담설화와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마늘이 나기 시작할 때 통으로 수십 쪽을 사서 하나하나 손으로까서 볕에 말려두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왜 사이가 안 좋은지를 ‘구술설화’로 알려주는 이모가 되지 않을까. 가끔 쥐가 파먹은 나무를 보면서 ‘사윗감을 구하러 다니는 쥐’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 어느 계절엔 시레기를 베란다에 잘 말려뒀다가 친구들이 놀러오면 무 조림이나 국을 끓여먹을 수도 있고. 그런 상상을 하면 괜히 마음 한곳이 나른해지면서 물렁해진다.풍습이 내게 스며드는 게 지겹거나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삶을 충만하게 영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느낀다. 계절에 맞는 식탁을 차려 음식을 나눠 먹고, 생활 방식을 계절에 따라 바꾸면서 나는 ‘어른’이 될 수도 있겠다.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인 계절들을 음미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