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나를 믿지마, 벗들] [원칙] 끝이 난 관계에는 충분히 슬픔을 표해야 한다. 더 상처받은 쪽이라면 진흙에서든 동굴에서든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해야 한다. 상처 입힌 쪽이라면 모름지기 면목 없어야 하고 어쩌면 후회도 해야 한다. [사례] B와 내가 같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학교 운동장이었다. 교실 창문 한 칸을 차지하고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B는 내게 할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B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나는 석식 시간부터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전부터일지도 모른다.B의 단짝 A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랑 셋이 노는 게 싫은 듯했다. A랑 B가 나누어 온 농담의 온도, 좋아하는 선생님을 향한 애정의 말들, 안 친한 우리 반 애들에 대한 관찰 일기 같은 것들. 내가 훌륭하게 따라잡았다 생각한 공기는 알고보니 어긋나거나 모자라거나, 어쩌면 흘러 넘쳤던 거지. 그 어긋남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왜인지 모른 척 하고싶었던 나는 평소처럼 웃고 같이 급식실에 가고 괜히 옆구리도 찌르고 그랬다. 그런 날들이 며칠 쌓이자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A는 B를 통해 “이제 너랑 놀고 싶지가 않아.”하고 말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나는 상처받은 척 했다. 검은 운동장을 말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야간 자습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B는 마치 제가 누군가와 손절한 듯, 한숨을 여러 번 쉬며 침울한 표정이었다. 나는 야자 1교시에는 일기를 적으며 이 관계를 추모했지만 실은 2교시부터는 그냥 하려던 공부를 했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를 원칙에 의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증스러운 나는 그 원칙을 적용한 바. 예외를 만들지 않아야 했다. 그러니 서운치 않은데 서운한 척 했고 기대한 적 없으면서 기대한 척 했다. 완전한 내 편이라 믿는 친구들에게 “A랑 안 놀게 됐어.”하면서 자못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사실, 내게 그다지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눈치채고 있었으니 그랬던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미리 알고 모르고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A가 내게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랬던 걸까 고민도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관계를 맺은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와 시간을 나누는 것의 귀함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 소망은 지금도 내 안과 밖 자아에 크게 영향을 준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좋은 사람이라 믿는 편이 좋다. 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기대는 잘 생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 줄 것이라는 기대도 여간해선 자라지 않는다. 소망하지만 기대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기대하지 않으므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아닐까? 소중한 관계가 끊어지면 슬퍼하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사람에게 기대했던, 기대하는 것처럼 굴어본다. 그러면 벗들이 믿는 내가 될지도 모른다 기대하고 바라면서.